2016. 4. 17. 16:05 묵상/아침묵상
21, 24절. “괴롭지만 너희에게 중요한 말을 해야겠다.” … “인자가 배반당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Msg]1. 3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살아온 이력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부르심으로 함께 살았습니다. 2. 제자들은 체감하지 못했지만, 예수는 이것이 수난 전에 마지막 식사임을 알았습니다. 3. “괴롭지만 너희에게 중요한 말을 해야겠다” 4. 예수의 수난은 한 제자의 배신으로 시작합니다. 이 괴로움이 수난 이야기의 시작 총성입니다. 5. 그것은 끝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고통의 기도, 육체의 고난과 제자들의 배신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6.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 7. 예수는 배신할 사람과 3년을 함께 했습니다. 자신을 버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셨고..
2016. 4. 17. 16:02 묵상/아침묵상
8절. 그것을 보고 발끈했다. “저렇게 한심한 일을 하다니! 이것을 큰돈을 받고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 텐데 [Msg]1. 온통 돈 생각뿐입니다. 말씀도, 선생도 그리고 가난한 사람도 다 들러리입니다. 2. 마태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드렸고, 유다는 분개했습니다. 3. 유다가 왜 발끈했습니까? 가난한 사람 때문입니까? 경제적 손해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도 제 것이 될 줄 알았는데, 쏟아 버리니 분개합니다. 4. 돈궤를 맡으라 했더니, 다 제 것인 줄 압니다. 탐심은 눈을 멀게 합니다. 제 것 아닌 것까지 다 제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5. 탐심은 생각의 저울추를 망가뜨리고, 분노는 망가진 영혼의 톱니바퀴에서 울리는 잡음입니다. 6..
2016. 4. 17. 15:59 묵상/아침묵상
32-33절.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양은 자기 오른편에, 염소는 자기 왼편에 두는 것처럼 사람들을 구분할 것이다.1. 열 처녀들 이야기, 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이야기 그리고 오늘 양과 염소의 이야기는 결국 갈림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2. 매 순간 우리는 갈림길에 섭니다. 갈림길을 잊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려집니다. 그렇게 삶은 늘 갈림길입니다. 3. 순간마다 내가 선택하고, 지난 선택들은 다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만, 결국 그렇게 걸어간 길들이 자신의 얼굴로 남는 법입니다. 4. 갈림길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갈림길에 서는 날이 있고, 그 날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습니다. 5. 오늘 예수의 이야기는 바로 그 순간을 보여 줍니다. 6. 예수는 세상의 종말에..
2016. 4. 17. 15:58 묵상/아침묵상
21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1. 만약 태양을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비유(그림언어)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2.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이 나라의 전부였던 백성들에게 천국을 설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 처음엔 흔히 보던 물건들로 설명합니다. 씨와 가라지, 작은 씨앗과 누룩 등에 빗댑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등불을 준비한 길잡이 처녀들로 설명합니다. 4. 예수는 탁월한 이야기꾼입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의 위치를 설명하고, 또 그 곳까지 가는 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5. 오늘은 하나님 나라 가는 길의 한 대목을 다른 그림언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6. 이 이야기에서 숫자는 함정입니다. 두 개 남김, 다섯 개 남김에 생각을 빼앗기면, 곁길..
2016. 4. 17. 15:57 묵상/아침묵상
2-4절.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똑똑했다. 미련한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 없이 등잔만 가져갔다. 똑똑한 처녀들은 등잔에 넣을 기름을 병에 담아 가져갔다. [Msg]1. 등불을 켜고 신랑을 기다리는 길잡이 처녀들의 모습 속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있습니다. 2. 예상된 시간에 신랑이 오지 않았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아니라 예상된 시간입니다. 누가 예상한 것입니까? 사람들입니다. 3. 섣부른 예상은 마음을 변덕스럽게 합니다. 힘껏 당긴 고무줄이 느슨해지듯, 모든 처녀들이 졸고 맙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4. 한 밤중에 소리가 들립니다. “그가 왔다. 모두 맞이해라” 이렇게 갑작스럽게 온다는 것이 약속이었습니다. 예상이 아니라, 약속이 중요합니다. 5. 모두 등불을 들었습니다. 등잔도 없이 나가는 길잡..
2016. 4. 17. 15:54 묵상/아침묵상
44절.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1. 분명한 가르침은 언젠가 끝이 있고, 예수는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비유나 상징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2. 언제 옵니까? 그 때는 언젭니까? 모르는 일입니다. 비밀에 두셨고, 하나님의 주관이라고 다시 분명히 말씀합니다. 3.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오시고, 또 갑자기 온다고 합니다. 특정지역에서나 특정한 사람에게만 알리시는 일이 아닙니다. 4. 왜 이럴까요? 하늘의 시간과 땅의 시간이 만나는 그토록 중요한 순간을 왜 이렇게 감춰두실까요? 5. 깨어 있고, 대비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비록 땅을 벗하며 살아도 하늘을 바라고 살라는 뜻입니다. 6. 오늘을 끝 날처럼 살고, 오늘을 오실 날..
2016. 4. 17. 15:52 묵상/아침묵상
28절.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드는 것을 볼 때마다, 너희는 썩어 가는 시체 위에 날아와 빙빙 맴도는 독수리를 생각하여라. 그 무리를 끌어 모으는 것이 살아 계신 인자가 아님을 얼마든지 확신해도 좋다.[Msg]1. 교차로는 도로의 민낯입니다.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나, 아름다운 풍경을 벗하는 지방도도 좋지만, 우리는 교차로에서 도로의 민낯을 볼 수 있습니다. 2. 그곳에서는 지나가고, 기다리고, 멈춰섭니다. 또 그곳에선 선을 넘기도 하고, 불법을 행하고, 정체되기도 합니다. 3. 오늘 예수는 시간의 교차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역사와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교차로를 그리고 있습니다. 4. 예수께서 묘사하는 ‘마지막 시간의 교차로’는 혼잡스럽습니다. 마치 해질녘, 정전으로 블랙아웃..
2016. 4. 17. 15:48 묵상/아침묵상
13절.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내는 사람은 결국 구원을 받을 것이다. [PT]1. 고백은 또 다른 고백입니다. 철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다른 남자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고백이 담겨 있듯 말입니다.2. 하나님을 영원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다른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첫 구절은 시간도 공간도 다 창조된 것이라는 뜻과 함께, 결국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때가 있다는 미래의 전제입니다.4. 성전 설교를 마친 예수는 이제 실물교육의 현장으로 제자들을 인도합니다. 삼 년간의 긴 가르침의 결론부와 같습니다.5. 무엇을 보여 주십니까? “성전”입니다. 그것은 이 땅의 공간 가운데 영원할 것이라고 생..
2016. 4. 17. 15:46 묵상/아침묵상
37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인 너희여! 하나님의 소식을 가져온 이들을 죽인 너희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너희 자녀를 애써 품으려 했건만, 너희가 거절한 적이 얼마나 많으냐?[Msg]1. 성전과 회당은 예수께서 백성을 가르친 대표적인 장소였습니다. 장소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2. 오늘 예수께서는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를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요즘식으로 하면 고별설교쯤 됩니다. 3. 고별설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일곱 번의 탄식입니다. ‘OUAI’라는 말은 비통과 책망이 섞인 탄식소리입니다. 4. 우아이! 우아이! 일곱 번의 탄식은 거의 예수의 울부짖음처럼 들립니다. 우리를 향한 애가의 기도입니다. 5. 왜 어찌 너..
2016. 4. 17. 15:29 묵상/아침묵상
3절. 그러나 그들을 따르는 것은 조심하여라. 그들이 말은 잘하지만, 그 말대로 살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마음에 새겨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모두 겉만 번지르르한 가식이다.[Msg]1. 심리학에서는 ‘내가 아는 나’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를 구분합니다. 이 두 사이의 거리가 마음의 건강을 가늠하는 기준이 됩니다. 2. ‘내가 아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사이가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면 ‘정신분열’이라고 진단합니다. 3. 예수께서 엄하게 꾸짖는 이 상황이 이와 유사합니다. ‘가르치는 것’과 ‘행하는 것’ 곧 앎과 삶의 거리가 왕래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는 겁니다. 4. 예수는 지금 종교적 패션쇼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멋진 옷을 걸치고 런-웨이를 걸어 다니고 있지만,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