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4. 09:11 묵상/아침묵상
1절. 그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1. 하루는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잘 사는 인생, 삶의 진국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2. 번뜩 든 생각은, ‘진지한 인생, 변덕스런 재미만 추구하는 나의 일상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과 십자가의 길’ 이런 것이 스쳤습니다. 3. 이어지는 목사님의 대답은 “무엇보다 우선, 하나님을 상대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역시 내 생각과 맞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말씀을 잊습니다. “물론 그 밖에도 상대할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위험과 부모와 적과 친구와 연인과 자녀와 아내와 교만과 겸손과 질병과 죽음과 성과 두려움과 평안” 4..
2016. 6. 3. 09:50 묵상/아침묵상
13절. 나는 야음을 틈타 골짜기 문을 나서서 용의 샘을 지나 거름 문에 이르는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보았다.[Msg]1.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위해 자리를 펴고 앉지만, 기도를 통해 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2. 기도로 대화가 열리면, 기도 안에서 ‘마음에 주신 것’을 받습니다. 이것이 곧 울림이고 울림은 사명이 됩니다. 기도의 사람은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일어나 행함으로 기도를 완성합니다. 3. 나는 목사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 그리고 영혼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눈으로 본 적이 없는 거대한 신비입니다. 4. 하지만 이 일은 언제 어디서나 눈으로 보고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행해집니다. 거룩한 사명의 무게만큼이나 땅을 이해..
2016. 6. 2. 10:55 묵상/아침묵상
3절.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1. 느헤미야는 누가 뭐래도 사명의 사람, 비전의 사람입니다. 그는 들었고 그는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의 음성도 직접 들려오지도 않습니다. 그는 형제 하나니에게 들었고, 상상 속에서 보았습니다. 2. 희미하게 들려오고, 흐릿하게 본 거룩한 땅의 황폐함이 그의 영혼에서 증폭되었고, 곧 이 장면이 그의 사명과 비전이 되었습니다. 3. 사명은 들은 것이고, 비전은 본 것입니다. 자신의 야망과 계획이 표면화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본래 내 것 아닌 것이 증폭되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4. 보고, 듣는 이 신비적 경험은 이 시대..
2016. 6. 1. 09:31 묵상/아침묵상
6절.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 집이 범죄하여1. 고난은 그 동안 갖고 있던 우리 자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 줍니다. 고통을 통해 광야에 들어서게 되면 우리는 땅과 하늘 사이에 홀로 서게 됩니다. 2. 고난은 내 현주소를 그대로 보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냉정하게 평가하도록 기회를 줍니다. 광야는 교양으로 옷 입고 있던 내 생각, 신앙, 인품, 욕망의 민낯을 보게 합니다. 3. 느헤미야는 광야에서 태어난 광야의 다음세대입니다. 붙잡을 추억도 없고, 한스러운 왕년도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 태어나 아무 것도 없는 광야의 아들입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