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디] 마태23:1-12 「앎과 삶의 거리」

3. 그러나 그들을 따르는 것은 조심하여라. 그들이 말은 잘하지만, 그 말대로 살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마음에 새겨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모두 겉만 번지르르한 가식이다.[Msg]


1. 심리학에서는내가 아는 나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를 구분합니다. 이 두 사이의 거리가 마음의 건강을 가늠하는 기준이 됩니다.

2. ‘내가 아는 나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사이가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면정신분열이라고 진단합니다.

3. 예수께서 엄하게 꾸짖는 이 상황이 이와 유사합니다. ‘가르치는 것행하는 것곧 앎과 삶의 거리가 왕래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는 겁니다.

4. 예수는 지금 종교적 패션쇼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멋진 옷을 걸치고 런-웨이를 걸어 다니고 있지만, 제 옷도 아니고, 쓸모 있는 옷도 하나 없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패션쇼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30초 워킹을 위해 대충 핀과 테잎으로 피팅한 것이 아닙니다.

6. 그분의 말씀은 일터의 작업복과 같고, 주부의 앞치마와 같고, 땀이 배인 사무원의 셔츠와 같습니다. 보여 줄 것 하나 없지만 삶의 이력서와 같은 옷입니다.

7. 옷이 삶의 현장에서 멀어지면 안 됩니다. 그럼 이 간극을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이미 멀어져 버린 앎과 삶의 거리를 보며, 냉소하고 리셋 버튼을 눌러 지워버려야 합니까?

8. 예수의 탄식과 질책은 리셋 버튼이 아닙니다. 예수의 경고는 판사의 판결이라기보다, 아버지의 회초리에 가깝습니다. 뉘우치라는 사랑입니다.

9. “너희가 종교적 패션쇼를 하고 있다는 질책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이 꾸짖음은 앎과 삶의 간격을 좁히는 구조 밧줄이 됩니다.

10. 먼저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쇼를 하던 마음의 런-웨이를 치우고, 나에게 주신 부르심에 합당한 옷을 입습니다. 앎과 삶이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일상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11. 이 부르심에는 높음도 없고, 낮음도 없습니다. 모세의 자리도 구경꾼의 자리도 없습니다. 오직 서로를 나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섬김과 봉사만 있습니다.

12. “예수께서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목사, 교사의 은사를 선물로 나눠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숙련된 봉사의 일을 하도록 훈련시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일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4:11-12, Msg)


2016.03.05 노병균 목사 『렉시오디비나』네가 누구이냐? 제 정신에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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