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디] 마태12.38-50 「요나의 증거뿐이다」 2016.02.03

39-4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증거를 찾고 있으나, 엉뚱한 증거를 찾고 있다. 너희는 너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고, 기적에 대한 너희의 욕망을 채워줄 무언가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가 얻게 될 유일한 증거는, 증거처럼 여겨지지 않는 요나의 증거뿐이다." [Msg]


1. 우리는 진실을 믿습니까? 아닙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누가 좋은 사람입니까? 나에게 좋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다른 기준이 없다면 나는 늘 내가 기준입니다.

2. 믿음이 있다는 것은 나 외에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 존재에 나를 굴복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사상이 아니라, 실제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3. 종교적 믿음도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 사상, 혹은 문화나 시스템과 유사합니다. 아니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적 허무입니다. 종교는 주체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한 도구입니다.

4.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는 종교가 아닙니다. 삶의 주체가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내가 만든 사상이나 습관이 아니라, 내 밖에 존재하는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5. 이 주체에 대한 전복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도 종교생활을 합니다. 여전히 삶의 주체가 자기 밖에 없다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 '헌신', 등은 그냥 종교적 수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6. 예수의 대적자들은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합니다. 이미 수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불충분이 아니라, 믿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7. 더 자극적인 기적을 보여 주면 믿을까요? 아닙니다. 믿지 않을 겁니다. 그럼 예수는 무엇을 보여 줍니까? 자기 자신 밖에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8. "요나의 증거뿐이다" 예수의 대답입니다. 요나의 증거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은유입니다. 예수는 더 요란한 기적이나 논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시합니다.

9. '사실'만큼 강력한 증거는 없습니다. 보잘 것 없고, 화려하지 않아도 '사실'에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실'을 불편해 합니다. 그리고 눈을 가립니다.

10. 가끔 '진실'은 내 생각과 다른 때가 있습니다. 아니 자주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실'에 눈 감거나, 귀를 막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그랬습니다.

11. 눈을 떠야 합니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진실' 앞에 초라한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는 진실입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12. 그렇기 때문에 참 예수를 만나면 지금까지의 주객이 전도됩니다. 이를 '전복적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계속 증거를 요구하는 세상에 보여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요나의 증거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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