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민수기 34:1~15 「주신 기업의 경계」

2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나는 그 땅의 사방 경계를 정해 너희의 기업으로 줄 것이다.[PT]


 [약속의 동서남북]

(3~12절) 언약하신 땅은 모호한 추상의 지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이 분명한 하나님의 사건임을 확인하기 위해 사방의 경계를 그어줍니다. 남쪽은 우리 능력의 한계요 불신의 아픈 기억이 담긴 가데스바네아까지입니다. 서쪽은 창조의 경계선 지중해까지, 북쪽은 이방의 경계선 레바논 호르 산(헐몬산)까지, 그리고 동쪽의 경계는 방황과 안식의 경계선 요단강까지 입니다.

 

[제비를 뽑아 나누다]

(13절) 줄로 재 주신 약속의 땅 안에서 백성들은 제비를 뽑아 기업의 위치를 정합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단순히 결정의 책임을 미루는 행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신 모든 것이 좋고 감사하다는 한 마음의 고백입니다. 최고 좋은 것을 취하려는 사행심이 아닙니다. 모두 좋을 때 우리는 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14~15절) 경계 밖에 두 지파 반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최선의 땅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들의 평가처럼 목축에 최적의 땅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언약의 경계 밖에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최선이 하나님께 최선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우리 안목에 의지한 선택은 우리를 경계선에 사는 아슬한 지파가 되게 합니다. 조금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경계가 있는 축복]

경계선은 이중적입니다. 누구는 장벽과 같다고 이야기하고, 누구는 안전한 울타리라고 말합니다. 본질은 무얼까요? 경계를 정하신 주체가 누구냐에 달려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쌓아 올린 담벼락은 감옥이 되지만(4:17), 사랑으로 품은 손길은 아버지의 품이 됩니다.(17:8) 경계선을 허무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사회는 아버지의 부재를 반증합니다. 아버지 사랑의 경계를 모르기에 경계를 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돌봄 안에서 자유를 맛봅니다.


2017.07.26.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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