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 저녁 무렵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 말했다. “여기는 빈들이고 시간도 늦었습니다. 사람들을 돌려보내 마을에 가서 저녁을 먹게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보낼 것 없다. 너희가 저녁을 주어라.”
1.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입니다. 그러나 친절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친절하지 않은 자비(Unmerciful mercy)’일 때가 많습니다.
2.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의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꼭 설거지 후 찾아온 손님처럼 불편하고 귀찮고 느닷없습니다.
3. 해가 저물고, 빈 들입니다. 사람들이 아직 먹지 못했다면, 마을로 돌려 보내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보낼 것 없다. 너희가 저녁을 주어라.” 말씀합니다.
4. 없습니다. 줄 것이 있다면 말씀 드렸겠죠. 그 분이 사정을 모르는 분도 아닙니다. 우리 수중에 보리떡 다섯 개, 마른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인 것을 알면서 그럽니다.
5. ‘대책 없어 보이는 음성’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모든 신앙인이 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앞서, 그 말이 정말 그 분의 말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6. 정말 그 분의 말이라면, 말씀하신 분에게 답이 있습니다. ‘엑스[X]’는 미지의 수이지만, ‘엑스는…[X=…]’하는 순간 답이 나옵니다.
7. “이리 가져오너라” 답의 시작입니다. 이 문턱만 넘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 일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8. 말씀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짧은 생각과 고집을 부리는 내가 어려운 겁니다. 운전석을 맡겨드리면,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9.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제자들은 다시 무리에게 음식을 주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10. “너희가 저녁을 주어라” 이 말씀은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내 주머니에서는 줄 것이 없지만, 받아서 전해 줄 수는 있습니다.
11. 삶의 문제는 주어의 문제입니다. 내 일이 아닌데, 내 일로 다 끌어 안고 삽니다. 문제가 아닌데, 모든 것을 문제로 만들며 삽니다.
12. 내가 주어일 때, 우리의 이야기는 딱 내 수준에 머무르지만, 그 분이 주어일 때 그 분의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그 분의 자비는 ‘친철하지 않은 자비’가 아니라,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자비’,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자비’입니다.
2016. 02. 09. 노병균 목사 『렉시오디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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