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2. 07:06 묵상/아침묵상
1. 하나님과 이별한 인류의 역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2.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도망친 후로 백지상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인간은 아슬아슬한 비탈길에 서 있는 동력 없는 수레와 같습니다. 3.“이렇게 하나님과 이별한 까닭에…”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각각 자신이 어떠해야 하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성적 혼란에 빠져 그들은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서로 학대하고 더럽혔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현대적 산물이 아닙니다. 참으로 질기고 오래된 일입니다. 4.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상태라면, 인류는 더 많은 문제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수많은 전쟁과 끔찍한 사건들은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말입..
2020. 2. 25. 09:49 묵상/아침묵상
“내가 너희를 예전처럼 사람들이 살도록 하고, 전보다 더 좋아지게 해주겠다. 그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인 줄 알 것이다” (겔36:11, 새번역) [예고 없던 사태] 1. 갑작스런 일이 닥쳤습니다. 세상은 뒤숭숭하고 재난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2. 더 악취가 나는 것은, 그 동안 우리 사회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수면위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3. 마치 큰 홍수에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이 떠올라 흘러가듯, 우리 사회에 감춰져 있던 오물 같은 문화나 생각들이 부유물처럼 떠오르고 있습니다. 4. 예를 들어, 그 동안 기독교만의 골칫거리였던, ‘신천지’ 사이비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5. 사이비종교가 얼마나 세상과 교회를 파괴하는지, 또 사회, 문화, 정치 등에 스며들어 영향을 줬는지 속..
2018. 1. 15. 08:16 묵상/아침묵상
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가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1_ 무엇의 수단이 되지 말라(12~17) 여러 이유로 얽매이기 쉽습니다. 사랑하다 얽매이고, 미워하다 묶이고, 먹다가 중독되고, 아슬아슬한 부도덕이 습관이 됩니다. 그 자체로 잘못된 일은 얼마 없습니다. 하지만 나쁠 것 없는 것도, 때론 좋은 것 조차도 묶이는 순간 영혼의 종양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얽매임은 우리의 모든 것이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도, 시간도, 감정도 실체 없는 가짜에 재료가 되어 버립니다. #2_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18~20) 탐식, 탐욕, 음행, 분노 모두 묶인 감정들입니다. 이것들은 욕망의 불씨에 우리 자신이 재료로 사용될 때 타..
2018. 1. 12. 08:42 묵상/아침묵상
9절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1_ 세상의 끝에 서다(9~13) 세상에서 왕노릇하는 사람들이 볼 때, 예수의 참 사람들만큼 볼품없어 보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시간이나 물질이 넉넉하지 않고, 문전박대를 당하고, 어디에서든 허드렛일을 얻어 근근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런 모습이 마치 개선군대 행렬의 맨 끄트머리에 서있는 전장포로 같은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2_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14~16)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런 텅빈 모습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합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허영심이나 탐욕은 담배연기와 같습니다. 강력하지만 곧 허무함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곧 없어질 신기루가 ..
2018. 1. 11. 08:05 묵상/아침묵상
8절 여러분들이 이젠 배가 부르고, 이젠 충분하다고 여기니 우리가 없어도 이미 왕이 되었군요. [PT] #1_ 바울에 대해 수근거리다(1~4) 죄가 풍기는 것은 교만입니다. 이 냄새는 숨길 수 없습니다. 다툼을 일삼던 그들은 복음을 전해준 바울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수근거렸고, 판단하고 험담했습니다. 이들을 대하는 바울의 태도를 보십시오.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고, 맞서기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저울 위에 자신을 올려 놓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부르신 이의 뜻에 오롯하게 묶입니다. #2_ 벗어나 왕이 되려 하다(5~8) 교만이란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서 벗어난 것이 죄이고, 교만입니다. 말씀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길이 되고 ..
2018. 1. 9. 08:37 묵상/아침묵상
11절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_ 여전한 미숙함(1~3)고린도교회에 대한 아쉬움은 그들이 여전히 미숙함을 벗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미숙함의 증거는 분쟁입니다. 편을 나누고, 서로 배척하고 밀어냅니다. 미움이나 분노는 에너지가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 지배한다는 것은 텅 비어 있다는 뜻이고, 영이 그들을 채우고 있지 못한 까닭입니다. #2_ 함께 노 젓는 자(4~9)깨어나십시오. 비록 작은 힘이나마 모아 집중해 보십시오. 우리가 주장하는 파벌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기대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 한 시절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들일 뿐입니다. 태양이 뜨면 촛불과 등불이 차이 없듯 주님 앞에 우리는 다 같은 사역자일 뿐입니다. ..
2018. 1. 4. 08:20 묵상/아침묵상
12절 여러분들이 편을 나눠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 말한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언제 여러분을 그렇게 나누었습니까? [PT] #1.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다(10~13) 바울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고린도교회 가운데 나뉨이 생겼고, 분쟁이 발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나뉨은 영혼의 적신호입니다. 왜 당을 만듭니까? 영혼이 허한 까닭입니다. 왜 나뉩니까? 움켜쥐려는 까닭이요, 뜻대로 못할 때 밀어낸 결과입니다. 인류의 첫 죄가 이 나눔의 계략에서 시작된 것을 보면, 이는 아주 오래되고 고질적인 질병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 누구에게도 속하려 하면 안 됩니다. 어떤 관계 속에서 안정을 누리고자 할 때, 곧 그것이 감옥임을 깨..
2018. 1. 3. 08:21 묵상/아침묵상
6절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새번역) #1_ 안부를 전하다(1~3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짧은 표현은 우리의 중심을 잡아 주는 무거운 추와 같습니다. 강물을 건널 때 물살을 이기기 위해 무거운 돌을 품고 간다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 돌이 하나씩 있습니다. 인생의 중심을 잡아 주는 이 추가 없으면 우리는 작은 샛바람에도 떠밀려가기 십상입니다. 이 뜻을 따라 길을 가고 있는 바울은 같은 뜻으로 부름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2_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해 지다(4~9절) 돌이켜보면, 감사할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는 크기만큼, 감사를 담는 그릇도 커집니다...
2017. 12. 28. 09:26 묵상/아침묵상
2절 가난한 이들을 지키시고, 어려운 이들의 자녀를 도우시며, 무자비한 폭군들을 엄히 꾸짖으소서. [Msg][주의 평화로 채우소서] 우리 존재가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공허함이 엄습합니다. 인간사의 영적 질병들은 이 공허함의 울림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시인이 탄식하고 있는 탐심, 인색, 폭력도 그 뿌리에 이 텅 빈 공허함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이런 쓴 뿌리들을 솎아 낼 수 있을까요? 도덕의 괭이와 법률의 쟁기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존재는 존재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텅 빈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2017.12.28.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2017. 12. 27. 08:08 묵상/아침묵상
14절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주님 품에 소망의 닻을 내리리]“주일이며 그런대로 즐거웠다. 남녀 성가대가 검은 옷에 흰 중백의(中白衣) 차림으로 십자가를 앞세우고는 성가실로부터 행렬을 지어 나오던 것이 기억난다. 제대 뒤편 위쪽은 스테인드 글라스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유독 내 흥미를 끌었다. 그 색유리창 중의 하나에 닻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뿐이던 나로서는 배 모양만 보아도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닻은 영원한 희망을 뜻하는 종교적 상징이었다. 즉 향신덕(向神德)의 하나인 망덕(望德) 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를 말한다” Thomas Merton. ‘Seven Story Mountain’. p.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