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과 이별한 인류의 역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2.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도망친 후로 백지상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인간은 아슬아슬한 비탈길에 서 있는 동력 없는 수레와 같습니다.
3.“이렇게 하나님과 이별한 까닭에…”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각각 자신이 어떠해야 하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성적 혼란에 빠져 그들은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서로 학대하고 더럽혔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현대적 산물이 아닙니다. 참으로 질기고 오래된 일입니다.
4.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상태라면, 인류는 더 많은 문제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수많은 전쟁과 끔찍한 사건들은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은 이런 죄의 힘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계속 있었던 것도 알아야 합니다.
5. 우리가 비탈길에 놓여 있지만, 그 동안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손길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틈만 나면, 우리의 본성은 이 손길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손길을 뿌리치는 완악함이 있습니다.
6. 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죄(ἁμαρτία, 빗나가다)”라는 말 외에 무엇이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쳤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치게 되면, 어떤 결과들이 수반됩니까? 어쩌면 필연적 결과들이죠.
7. 성경에는 스물 한가지 증상들이 나옵니다. 저는 이 증상에 대한 해설을 덧붙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결과들은 모두 생명을 담보로 하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들입니다. 또 이 보다 더 많은 증상들도 많이 있습니다.
8. 하지만 저는 더 치명적인 증상을 주목해야 합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이런 것들이 “죽음에 이르는 죄라는 것”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권장한다는 것입니다.
9. 이것이 더 치명적 죄의 악순환입니다. 저는 이것을 “죄의 연대”(sin's coalition)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죄의 연대… 이 부분이 더 치명적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10.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인들의 행태를 보며,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마23:13)고 일갈하신 부분이 바로 이 죄의 연대입니다.
11.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이 죄의 연대를 깨는 사령부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단단하게 굳은 죄의 완악함을 쪼개는 쇠깃돌입니다.
12. 그래서 우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이 시대는 오늘도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친 결과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오늘 로마서는 그 죄의 비참함과 연대를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2020.07.22 노병균 목사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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