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절.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내는 사람은 결국 구원을 받을 것이다. [PT]
1. 고백은 또 다른 고백입니다. 철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다른 남자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고백이 담겨 있듯 말입니다.
2. 하나님을 영원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다른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첫 구절은 시간도 공간도 다 창조된 것이라는 뜻과 함께, 결국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때가 있다는 미래의 전제입니다.
4. 성전 설교를 마친 예수는 이제 실물교육의 현장으로 제자들을 인도합니다. 삼 년간의 긴 가르침의 결론부와 같습니다.
5. 무엇을 보여 주십니까? “성전”입니다. 그것은 이 땅의 공간 가운데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유일한 곳입니다. 그러나 “다 무너뜨려지리라” 공간의 끝입니다.
6. 무엇을 들려 주십니까? “그 날과 그 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시간은 멈추는 때가 있고, 시간이 새롭게 되는 날이 있다는 말입니다. 시간의 끝입니다.
7. 끝을 알면 과정이 단순해집니다. 끝을 모르니, 더 요란하고, 혼란스럽고, 속임이 무성한 것입니다.
8.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바닷길을 아는 뱃사람이 바다 한 가운데서 닻을 던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9. 그 길은 단순합니다. 하지만 단숨에 달려갈 지름길은 아닙니다. 하루에 한 걸음 걸어 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10. 시간은 ‘살아 가는 시간’과 ‘살아 내는 시간’이 있습니다. ‘살아 가는 시간’은 계곡물처럼 맑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댐에 물이 고이듯, 참음과 기다림이 필요한 ‘살아 내는 시간’도 있습니다.
11. 이제 시작과 끝을 아는 우리를 향한 예수의 권면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내라’, ’끝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
12. 살아 내는 시간은 고되고 지루하지만, 끝을 알기에 살아 낼 수 있고, 마지막 순간 그 작은 물줄기가 모여 흘러 넘칠 때, 폭포수가 됩니다. 끝을 안다는 것은 오늘 그 끝을 산다는 것입니다.
2016.03.09. 노병균 목사 『렉시오디비나』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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