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절 마치 굶주린 자가 꿈에 먹기는 하나, 깨어나면
더욱
허기를
느끼듯이, 목마른 자가 꿈에 마시기는 하나, 깨어나면
더욱
지쳐서
갈증을
느끼듯이
시온
산을
치는
모든
나라와
무리가
그러할
것이다[새번역]
[실상은 허기진 백성들]
(1~4) 멜빌(H. Melville)의 『모비딕』을 폈을 때 압도하던 첫 문장, “내 이름은 이스마엘, 앞으로 나를 그렇게 불러 주길 바란다” 선지자는 그 무게만큼 짓누르는 감정으로 탄식을 시작한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슬픔의 성읍이여” 아리엘은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하는 이름이다. 평화의 성읍이 슬픔의 성읍이 되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당시 영적 난민들의 현실을 이 짧은 한 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5~8) 세상을 몸으로 비유한다면, 예루살렘은 영혼으로 여길 수 있다. 당시 예루살렘의 황무함은 시대의 텅빈 영혼의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화려한 성전은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찾을 수 없고, 성전뜰과 골목마다 제사장이 활보하나, 영혼을 만지는 영성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포도주가 떨어져 버린 혼인잔치요, 떡이 없는 유월절, 물이 말라버린 초막절이다. 선지자는 지독하게 변함없는 텅빈 세상의 허위를 탄식하고 있다. 마치 꿈에 진미를 먹고 마셨지만, 깨고 나면 더 깊어지는 허기와 갈증이 이 시대 예루살렘의 형편이다.
(9~14) 이런 갈증과 허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일이라 보는 게 맞다. 종교적 형식은 있으나, 마음은 조금도 없고, 화려한 제복은 있으나 그 안에 경외감은 티끌만큼도 찾을 수 없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직접 검사석에 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고 공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고, 그들의 종교적 행위는 물려 받은 습관일 뿐이다”(13) 묵시가 메마르고, 말씀이 희귀해지고, 지혜와 총명은 사라진 까닭이 이것이다.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말1:10) 이 메시지는 과장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린 가슴에서 흘러 나오는 탄식으로 차라리 절제된 표현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예부터 부정했던 사람들이요, 높아지길 좋아했던 자들의 후손입니다. 말씀을 금송아지로, 성전을 이방제단으로 둔갑시킨 사람들입니다. 그들뿐이겠습니까? 도시마다 골목마다 자리를 마련한 교회들은 안녕하십니까?
우리에겐 다시 은혜가 필요합니다. 봉해진
계시를
다시
풀
은혜(11), 떠나버린 마음들을 다시 아버지께 돌릴 은혜, 그리고
꺼져버린
번제단에
다시금
불을
지필
은혜의
동풍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한번 더 불쌍히 여기소서.
2017.09.28. 노병균 목사 『아침묵상』
'묵상 > 아침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상] 이사야35:1~10 「거룩한 길로 가다」 (0) | 2017.10.11 |
---|---|
[묵상] 이사야 29:15~24 「빛의 무대에 서라」 (0) | 2017.09.29 |
[묵상] 이사야 28:23~29 「하나님의 뜻과 지혜」 (0) | 2017.09.27 |
[묵상] 이사야 28:1~8 「다시 이스라엘을 경고하다」 (0) | 2017.09.25 |
[묵상] 이사야 25:1~12 「구원을 노래하리라」 (0) | 2017.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