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0. 07:56 묵상/아침묵상
11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회복을 청하다] (1~6) ‘나의 죄악을 깨끗이 씻으소서’(2) 하나님의 빛은 죄를 드러냅니다.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치유하기 위함입니다. 그냥 덮어주는 것이 사랑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무관심이고 무능입니다. 복음에는 죄를 다룰 능력이 있기에 죄를 피하거나 숨기지 않습니다. 죄를 직시합니다. (7~12)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11) 구원받은 사람은 죄에 대해 민감해집니다. 동시에 나에게는 죄를 이길 능력이 없다는 것도 깨달아 탄식하게 됩니다. 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재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가득참’이야 말로 죄를 이길 능력이고, 죄를 이긴 상태입니다. 그래서 죄를 깨달..
2017. 10. 19. 10:34 묵상/아침묵상
12절 설사 내가 굶주린다 한들 너희에게 손을 벌리겠느냐? 온 우주와 거기 가득한 것이 다 내 것임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PT] [우주를 조성하신 하나님] (1~3) 천문학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조물주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정교하고 광활한 우주를 보고도 ‘모든 것이 우연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봄바람에서 하나님의 기운을 느끼고, 산과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지문을 봅니다. (4~6) 우주를 조성하신 하나님은 힘이나 법칙으로 존재하는 비인격적 존재가 아닙니다. 광활한 우주를 조성하신 솜씨만큼이나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세상의 일들에 관여하십니다. 그분은 창조된 만물들과 소통하시며 돌보시고,(5) 어그러진 것을 바로잡는 심판대에도 앉으십니다.(6) [불협화음] (7~..
2017. 10. 18. 07:41 묵상/아침묵상
2절 히스기야는 사신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그들에게 왕궁 내부를 구경시켜 주면서, 자기가 가진 보물들을 전부 자랑 삼아 보이며 우쭐거렸다. 자기 왕궁이나 나라 안에 있는 것 가운데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Msg] [바벨론 사신의 방문] (1~2) 아직 도시국가였던 바벨론의 왕, 므로닥발라단은 외교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의 소식을 듣고 서쪽 끝 변방에 있는 유다까지 사신을 보내 히스기야를 위로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합니다. (3~4) 문제는 히스기야의 반응입니다. 그는 사신들에게 왕궁의 수장고를 열어 모든 것을 보여 줍니다. 과시하고 싶고 매력적인 나라로 봐주길 바랬던 모양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면, 바벨론이 유다를 더 대단하게 볼 ..
2017. 10. 16. 06:46 묵상/아침묵상
5절~6절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길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삶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나라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살림 받은 경험](1~3) 히스기야는 병에 걸렸습니다. 비록 뒤에 기록되어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앗수르의 공격을 이겨낸 이야기(36~37장)보다 두 해 전쯤 있었던 일입니다. 이미 불치라는 절망의 상황에서 돌아온 경험은 곧 직면할 민족적 위기를 극복한 힘이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이야기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4~6) 절망의 상황이 기적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고난의 청구서를 받지 않았다면, 결코 관심 두지 않았을 은혜의 자리를 비로소 바라보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위기의 순간에 기도하는..
2017. 10. 13. 09:52 묵상/아침묵상
20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PT] [히스기야의 탄원] (1~4) 대표단이 전해준 랍사게의 협박을 듣자, 히스기야는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홀로 하나님 앞에서 서는 순간 그는 이사야에게 중보기도 요청도 잊지 않습니다. (5~7) 이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첫 응답은 “두려워하지 말라”(6)였습니다. 거친 말로 능욕하던 이 사람들이 아침안개처럼 곧 돌아갈 것이고,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들려줍니다. [두 번째 협박] (8~13) 이처럼 결론은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에 이르기 전 현실은 더 절망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앗수르가 물러가리라는 사실을 미리 들었지만, ..
2017. 10. 12. 11:33 묵상/아침묵상
21절.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조롱과 비난] (1~3) 갈등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비바람 눈보라를 맞으면서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유다에게 앗수르의 압박은 혹독한 겨울 바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들은 힘이 있고, 무자비하고, 거친 입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유다를 궁지로 몰아 세우고 있습니다. (4~6) 갈등은 룰이 지켜지는 스포츠 경기가 아닙니다. 거짓과 과장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해 보십시오. 이들에게도 패턴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공격은 ‘비난’입니다. 원수는 지나온 삶을 비난하고, 과거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7~10) 이어지는 ..
2017. 10. 11. 08:55 묵상/아침묵상
8절 거기에는 큰 길이 생길 것이다. 그 길은 ‘거룩한 길’이라고 불린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그 길을 다닐 수 없으니, 오직 그 길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길이다. 어리석은 사람들 역시 그 길 곁에 서성일 수 없다. [PT][아름다움을 보리라] (1~2) 성경은 하나님께서 미리 열어 보여 주신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압니다. 오늘뿐 아니라 내일 그리고 먼 훗날까지 들려주기에, 이 이야기는 점이 아니라 선과 같습니다. 간혹 오늘 거친 땅을 지날지라도, 성경은 그 길의 끝과 곧 만날 희망의 샘물을 들려주시니, 성경은 이 거친 땅을 걸어갈 힘이 됩니다. 이사야 선지지는 사막과 메마른 땅의 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땅이 변해 초원이 되고, 초원은 다시 꽃밭이 ..
2017. 9. 29. 09:07 묵상/아침묵상
19절 겸손한 사람들은 여호와로 인해 기쁨이 차오르겠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인해 즐거움을 맛보게 되리라.[PT][어둠으로 인한 교만] (15~21) 길 잃은 자들의 도드라지는 특징은 어둠에 거한다는 점이다. 어둠이 임한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 찾아 들어간 것이다. 누구나 어둠에 대해선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이다. 그들은 감추길 좋아하고, 수근거리길 즐기며 '내 마음을 누가 알랴?'라고 비아냥거린다.(15) 어둠의 무지는 만용을 부른다. 생각해 보라. 어찌 창조하신 분이 모르겠는가?(16) 또 때가 되면 이런 현실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알게 하시리라. 빛과 공존할 어둠이 없듯, 그분의 눈 앞에 감출 수 있는 영혼은 없다.(20)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말라] 이제 빛 앞으로 나..
2017. 9. 28. 08:48 묵상/아침묵상
8절 마치 굶주린 자가 꿈에 먹기는 하나, 깨어나면 더욱 허기를 느끼듯이, 목마른 자가 꿈에 마시기는 하나, 깨어나면 더욱 지쳐서 갈증을 느끼듯이 시온 산을 치는 모든 나라와 무리가 그러할 것이다[새번역] [실상은 허기진 백성들] (1~4) 멜빌(H. Melville)의 『모비딕』을 폈을 때 압도하던 첫 문장, “내 이름은 이스마엘, 앞으로 나를 그렇게 불러 주길 바란다” 선지자는 그 무게만큼 짓누르는 감정으로 탄식을 시작한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슬픔의 성읍이여” 아리엘은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하는 이름이다. 평화의 성읍이 슬픔의 성읍이 되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당시 영적 난민들의 현실을 이 짧은 한 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5~8) 세상을 몸으로 비유한다면, 예루살렘은 영혼으로 여길..
2017. 9. 27. 08:43 묵상/아침묵상
23절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하나님, 그 지혜로운 농부] (23~25) 하나님은 지혜로운 농부를 등장시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주목하여 보면, 하나님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파종을 위해 땅만 가는 농부가 어디 있습니까? 땅을 고르게 했으면, 이번엔 씨를 고르고 뿌리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닙니까? 종류별로 때를 따라 정한 뜻을 쫓아 뿌리고 심고 가꾸지 않겠습니까? (26~28) 이런 농사의 일조차도 하나님이 열어 보이사 가르치신 일입니다. 머리로든, 몸으로든, 귀로든 우리는 다 하나님의 뜻에 몸 부비며 배우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서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허나 왜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