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절. 너희는 과거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의 날을 정하여 지켜 왔다. 그런데 너희가 정말 나를 위해 그 일을 했느냐? 축제일들을 지킨 것이 정말 나를 위한 일이었느냐? 아니었다.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데, 너희는 종교에 관심이 있다. [Msg]
1. ‘본말전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시작과 끝을 뒤바꾸는 습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태생적 원죄의 흔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일의 처음과 나중을 바꾸어 버리면, 길을 잃은 여행과 같습니다. 이런 일은 텅 빈 정도가 아니라, 헛짐을 지고 사는 고생이고, 수고롭고 낭비하는 인생입니다.
3. 누가 절기를 지켜달라 했습니까? 누가 성전을 지어달라 했습니까? 그분이 무엇이 아쉬워 우리의 절기 준수가 필요하고, 손으로 지은 돌집이 필요합니까?
4. 말씀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절기’는 ‘시간의 의미’를 더해 주는 일이고, ‘성전’은 ‘공간의 의미’를 살려 주는 축복입니다.
5. 처음엔 그 의미를 알고 축제를 즐거워했겠지만, 이내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아 버렸습니다. 의미를 잃은 형식은 생명이 떠난 주검과 다를 것 없습니다.
6. 생명 없는 주검을 이고 살려니, 얼마나 고된 인생입니까? 하나님 없는 종교 생활이 그렇습니다. 기쁨 없는 금식은 고행이고, 은혜 없는 예배는 몽유증입니다.
7. 뿌리를 알아야 하고, 시작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는 일들은 노동이 아니라, 그분과 리듬을 맞추는 춤입니다.
8. 그러므로 땀을 흘리며 열심히 하는 것보다, 그분의 자연스런 리듬을 몸에 익히고, 즐거워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 이 말입니다.
9. 우리가 귀를 열면 하나님의 리듬이 들립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을 통해 그 리듬 안으로 늘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10. 하지만 우린 하나님의 계시에 마음을 굳게 닫았고, 이를 악물고 반항했습니다. 각기 자기의 춤을 추며 ‘하나님을 위한다’ 합니다. 정말 그분을 위해 한 일입니까?
11. 금식보다 듣기를 원하십니다. 열심보다 따라오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같은 음악을 듣는 무도회장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12. 지금도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충혈된 경쟁을 멈추십시오. 목소리 높이던 소동을 그치십시오. 누구를 위해 그 야단이란 말입니까? 원하는 회복은 멈추고,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은 두들겨나는 굉음이 아니라, 울려오는 소리에 공명되는 울림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2016.05.23.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나를 위해? 얘야 좀 솔직해 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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