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절. 종교 지도자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서, 그것이 자기들을 두고 한 말임을 알았다. 그들은 예수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고 싶었으나, 여론이 두려워 참았다. [Msg]
1. 예수께서 선을 넘으셨습니다. 너무 못 알아 듣는 것이 안타까워서인지, 아니면 들어도 도무지 반응 없는 돌 같은 그들 마음 때문인지, 경계선을 살짝 넘었습니다.
2. 이 비유는 차마 하지 말았어야 할 비유입니다. 너무 분명해서 알아 듣기 쉽고, 그 대상이 된 사람들에겐 손톱 밑 가시처럼 성가시고 아린 찔림입니다.
3. 차라리 그들에겐 “이 뱀의 자식들아…”라고 욕하시는 편이 편합니다. “젊은 사람이 교양이 없고, 무례하군!”하며 핑계라도 될 테니 말입니다.
4. 피할 곳이 없는 분명한 비유입니다. 포도원은 세상, 종들은 먼저 온 선지자들, 그리고 주인은 세상을 만드신 분, 그럼 마지막에 보냄을 받은 아들과 이 아들을 죽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아들은 예수요, 그를 죽인 사람들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5. 이렇게 분명한 비유는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는 쐐기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 안에 다른 것이 가득 찬 사람들에게는 뇌관을 치는 방아쇠가 되었습니다.
6.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한 말임을 알고, 예수를 감옥에 가두고 싶었다.” 정말 이 비유는 정확했습니다.
7. 시금석을 갖다 대면, 옳고 그름이 더 분명해 집니다. 당시 사람들을 가늠하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가늠자가 됩니다.
8. 예수의 이야기에 참관자는 없습니다. 단지 참여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 우리의 배역은 무엇입니까? 포도원입니까? 선지자들입니까? 아들입니까? 아니면 포도원의 주인입니까?
9. 2016년 오늘, 이 이야기에서 아직 캐스팅되지 않은 배역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그 자리입니다.
10. 오늘날 그 역할은 교회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이 위험한 비유는 날마다 주인의 포도원을 탐하는 위험한 시도를 반복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11. 위임 받은 종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은 단순합니다.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과 ‘욕심이 이 화를 불렀다’는 것, 그리고 ‘포도원 주인이 올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 전체의 플롯입니다.
12.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밖에서 죽임 당한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나셨고, 용서하시고, 돌이킨 사람들을 모두 구원한다는 사실입니다. 듣고 돌이키면 삽니다.
2015.02.29. 노병균 목사 『렉시오디비나』 ‘성경을 한 눈에 풀어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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