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오작동]
1. ‘확증편향’은 인간 사고의 오작동을 잘 요약한다.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경향이다.
2. 이미 한 손으로 선입견을 단단히 붙잡고 있기에 그 손을 놓지 않은 한, 자기 수준 너머에 있는 것에 닿을 수 없다.
3. 이럴 때, 질문은 추궁이 되고, 의문은 의심과 의혹이 된다. 예수를 대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태도도 이렇게 이해된다. 그들의 질문들은 추궁이다.
4. 이 오작동의 뿌리는 어떤 것일까? 그들이 붙들고 놓지 못하는 그 확신의 기둥은 무엇인가? 바로 ‘자기자신’이다. 자아의 기둥에 영혼이 묶여 있다.
[자아인력]
5. 우리는 다른가? 우리 영혼은 어디에 묶여 있는가? 보기 전에 판단하고, 이해하기 전에 단정하고, 알기 전에 그려본다. 그리고 나의 판단과 단정과 그림 속에 상대방을 재단한다.
6. 이쯤 되면, 사실과 진리도 쓸모 없다. 왜냐하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밖에 없다.
7. 주의하지 않으면 자아라는 녀석은 이렇게 인력(引力)이 강해 모든 것을 빨아 당긴다. 처음엔 취향 다음엔 감정과 사실, 이후엔 진리도 보이지 않는다.
8.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잡아 당긴 후에는 강화된 자아는 나 아닌 것들을 밀어 내기 시작한다. 타자의 추방이다. 예수도 그렇게 밀려 났고, 그렇게 죽임을 당했다.
[자유의 날]
9. 그는 진리이기에, 고약한 자아의 비위를 맞출 수 없다. 그는 사실이어서 뒤틀린 오해를 옳다 할 수 없다. 결국 받아들이지 않기에 자아는 밀어낸다.
10. 신이 되어버린 자아는 결국 진리를 밀어내고, 때리고, 비난하고, 죽음의 언덕 위까지 몰고 갔다. 예수는 끌려가는 양처럼 말 없이 밀려 갔다.
11. 예수의 밀려 나심과 달리심은 우리의 모든 왜곡된 자아를 끌어 안고, 뒤틀린 영혼의 묶임을 품에 안고 산에 오르신다.
12.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 놀이에 빠진 우리 자아의 죽음이다. 예수의 쏟으심은 정수리까지 가득 찬 우리 죄악이 쏟아지는 사건이다. 거짓에 묶인 자들에게 예수는 말로 하지 않고, 품으신다.
2017.03.27.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나는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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