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부활, 영원에 대한 해답]
1. ‘영원’이라는 개념은 ‘진리’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추하고, 그릇되고, 어그러진 것들의 영원은 그 자체로 저주다.
2. 인간사에서 ‘영원’이란 개념이 왜곡되어서, 때로는 욕망의 얼굴로, 때론 두려움의 피난처로 뒤틀린 이유는 ‘영원’이란 시간에 가득 채울 ‘진리’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3. 예수의 부활은 이 ‘영원’에 대한 해답이다. 부활은 낭비 없는 영원, 충만한 완성을 이해하는 관문이다.
4. 부활은 거듭나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지고, 그의 숨결 위에서 살아가는 시간들을 그보다 한참 못한 것들에 허비하는 인생을 돌이키게 한다.
5. 예수는 부활이다. 그의 메시지는 부활에 관한 소식이고, 성경은 부활의 책이다. 어떤 것은 죽고 어떤 것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사건이다.
6. 그리스도인이란 이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래서 옛 이름을 던져버리고 새 이름을 부여 받은 것이다. 부활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알리는 환호성이다.
[예수, 영원한 차원으로 인도하는 관문]
7. 하지만 부활을 이해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별해야 할 것을 놓지 못한 까닭이다. 죽은 것을 쥐고 있으면, 새 것을 잡을 수 없는 이치다.
8. 예수를 찾아온 사두개인들도 역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손에 움켜 쥔 것이 너무 많아, 생각을 휘감고 있는 것이 너무 단단해 새 것을 이해할 수 없다.
9. 부활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다른 차원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무한한 가치’를 붙들어야 한다.
10. 점과 선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고, 선과 면도 그리고 면과 공간도 다른 차원이다. 점이 선이 되기 위해서는 점이 무한을 통과해야 하고, 선이 면이 되기 위해서도 무한을 통과해야 한다.
11. 우리 과거의 시간과 내용들을 영원한 차원으로 인도하는 관문에 예수라는 한계의 선이 없는 분이 서 계신다. 그분이야말로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관문이다.
12. 사두개인들이 진리를 주목하지 않으니, 영원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진리를 안다면, 그
진리가
우리에게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
준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옛 것이 죽고, 새
것이
태어나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이 선을 통과하면 모든 것이 산 것이 된다.
2017.03.30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산
자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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