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0절 불탄 자들이 드렸던 놋 향로를 가져다가 쳐서 제단을 싸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고라와 그의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7-48절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화로가 거울이 되다]
1. 흠이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생채기는 같아도 결과는 다르다. 어떤 것은 생명을 지키는 백신이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것은 곪아 썩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그리스도인들은 흠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 직전의 아슬한 경계선까지 가본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경계선에서 돌아온 사람들이다.
3. 고라당이 남긴 향로는 반역의 전리품과 같다. 심정 같아선 멀리 던져버리고 싶다. 아픈 경험은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은 게 우리 마음이다.
4.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 그 향로를 넓게 펴 제단을 감싸라 하신다. 피할 수 없는 곳, 가장 거룩해야 할 곳, 한 가운데 반역의 놋 향로를 펴 거울로 삼으신다.
5. 진리의 생명력은 오류와 악을 직면하게 한다. 감추지 않고 한 가운데 드러낸다. 그리고 그 상처가 더욱 생명을 강하게 하는 백신이 된다.
6. 제단을 감싼 반역의 놋 조각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백성들의 거울이 되었다. 놋 거울에 비친 굽은 얼굴을 볼 때마다, 백성은 기억하고 조율된다.
[죽음과 생명 사이에 서다]
7. 상처가 오히려 백신이 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독특성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무엇이 이 상처를 이기게 하시고 치유하는가 이다.
8. 바이러스가 백신이 되거나 병원이 되는 갈림길에는 고통의 경험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이미 이겨낸 것도 그 고통을 딛고 온 것이다.
8.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통 속에서 고침을 사람들이다. 우리는 스스로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덧날 것 알면서도 생채기를 긁는 이들이 우리 아닌가?
9. 고라당 반역 후에도 사람들은 몰려와 다시 원망한다. 당신들이 사람들을 죽인 것 아니냐고, 돌맹이를 든다. 더러운 손으로 생채기를 긁어대는 모양이다.
10. 상처가 덧나 염병이 돌 때쯤, 한 사람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선다. 고름을 빠는 어미처럼 그들 사이에 선다. 은혜는 여기에 있다. 백성이 아니라 중보자에게 있다.
11. 중보자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미메시스다. 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산 자의 경계선에 선 모세를 통해 우리는 예수를 본다.
12. 기독교 신앙의 가장 감격스럽고 놀라운 주제가 이것이다. 중보자가
있다. 가로막고 서는 분이 계시다. 죽음의
문턱에는
가로막은
자가
서
계시고, 우리의 옛 죄는 거울이 된다. 오늘도
이
위대한
이정표를
본다.
2017.06.20. 노병균 목사 「아침묵상」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묵상 > 아침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상] 민수기 18:1-32 「직무와 선물」 (0) | 2017.06.23 |
---|---|
[묵상] 민수기 17:1-13 「순이 돋은 지팡이」 (0) | 2017.06.22 |
[공명] 민수기16:1-35 「고라당의 반역」 (0) | 2017.06.19 |
[묵상] 민수기15:32-41 「탐욕의 처방전」 (0) | 2017.06.16 |
[묵상] 민수기15:1-31 「속죄의 제사장」 (0) | 2017.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