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깊은 반항심]
1.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에게 피곤과 깊은 반항심이 찾아 들었다. 우리는 왜 이러고 있는가? 약속의 땅은 어디 있는가?
2.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는 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비전을 붙들기 어려웠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의 풍경뿐이었다.
3. 피곤이 매몰차게 반항심으로 이어지는 노정이 있다. 피곤함은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리고 이 무감각은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고, 그것은 주변에 대한 반항심으로 터진다.
4. 이런 갈등은 우리가 감춰둔 내면의 속살을 들춰 낸다. 광야의 황무지에서 우리는 자신의 약점과 결점이라는 냉엄하고 혹독한 현실에 부딪친다.
[자신의 실상]
5. 전에 없이 자신의 실상을 알게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광야는 고립무원의 장소다. 숨은 죄와 두려움을 찾아내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거기 있다.
6. 고라와 다단 그리고 아비람의 반역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태와 두려움이 곪아 터진 자해행위다. 꼭 모세가 아니었어도 그들은 반역했을 것이다.
7. 죄와 두려움은 한 인간인 나를 파멸시키려 위협하며, 탈선의 원인이다. 이것은 우리가 여행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한다.
8. 그러나 이런 갈등을 비관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우리에겐 치유자가 있다. 곪아 터진 상처를 싸매는 시간이 있다.
[배신의 비늘이 떨어지다]
9. 문제가 없는 사람이나 시대는 없다. 관건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차이다. 광야는 절망의 땅이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회복의 시점이기도 하다.
10. 이렇듯 광야는 정화의 자리, 곧 자신을 점검하고 자기 결점을 직시하며 잘못을 바로잡는 곳이 될 수 있다.
11. 이렇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남을 통해 우리는 이 광야 길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넘어짐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무릎 깨지는 고통 속에서 깨달은 의미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12. 배신과 상처, 눈물과 외로움은 내가 귀향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새삼 인식시켜 준다. 광야의 한 지점에서 이스라엘은 또 하나의 가면을 벗어 던졌다.
2017.06.19. 노병균 목사 「아침묵상」 ‘늘 우리는 반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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