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절.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고난을 통과하심]
1. 고통에 관해 그리스도인들은 면제되거나 유보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고통에 부딪치면서 통과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2. 예수도 고난을 통치하거나, 짓누르는 방식으로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 깊은 곳으로 오롯이 들어오셨습니다.
3. 그의 수난 속에는 흔한 변명조차 없고, 그의 몸짓에는 우리의 뻔한 반응이 조금도 없습니다. 지극한 인간이셨지만, 인간스러움은 조금도 없습니다.
4. ‘공회 앞에 서신 주님’ 그들의 죄를 대면하기 위해, 죄인처럼 그들 앞에 섰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보았지만, 예수는 그들의 배후를 보고 있습니다.
[죄를 바라보심]
5.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말하라’(67) 예수는 추궁에 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증명되는 존재가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6. ‘내가 말할지라도…’ 가장 슬픈 대답입니다. 예수에게가 아니라, 듣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없는 기근이 아니라, 있지만 알지 못하는 절망입니다.
7.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믿음은 경험의 결과나 논리적 귀결이 아닙니다. 믿음은 비춰진 햇볕처럼 비춰진 은혜입니다.
8. 한 낮일지라도 무지와 교만의 기둥 뒤에 숨어 서면, 도저히 알지 못하고,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그 교만의 기둥 앞에 주께서 섰습니다.
[죄를 끌어 안으심]
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 말씀은 우리의 시선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 올립니다. 완악함과 무지에 상관없는 더 높은 사실로 인도합니다.
10.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공회 앞에 서신 주님은 모든 이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는 반전으로 이끕니다.
11. 깊은 어둠이 빛살의 배경이 되듯, 우리는 의심으로 그를 증명하고, 예수를 법정에 세움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섭니다.
12.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예수는 그렇게 인간의 무지와 불신의 법정에 서서, 고통
가운데
선
하나님의
아들을
보기
위해
모인
모든
죄악들을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품에
끌어
안습니다.
2017.04.09.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이렇게 주님을 대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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