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절.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계속 묶여 있다]
1. 참 궁금한 부분입니다. 왜 제자 둘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앞서 그들이 ‘이 모든 된 일’(13)에 대해 이야기하며 갔다 하니, 몰라봤다는 것이 더 의문입니다.
2.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라고 설명합니다. 누가는 성경 전체에 단 한번 나오는 ‘에크라툰토’라는 단어를 골라 사용합니다.
3. ‘에크라툰토’는 ‘억제하다’라는 동사의 미완료 수동 형태 단어입니다. 거칠게 번역하면, ‘(보지 못하게) 계속 묶여 있었다’ 쯤으로 풀 수 있겠습니다.
4. 아마 누가는 전혀 변함이 없는 그 두 사람의 안목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5. 그들 스스로 말하듯, 부활에 대해 ‘어떤 여자들의 증언’(22)과 ‘제자들의 증언’(24)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함없는 그들의 마음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은총으로 돌보소서]
6. 오랫동안 ‘그 모든 일’을 보고, 알았던 제자들조차도, 도무지 볼 수 없는 까닭이 있습니다. 완고한 자아가 안목을 붙들고 있으면, 도무지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법입니다.
7. 되려 ‘당신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17) 묻는 예수의 물음 앞에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모른단 말입니까?’(18)라고 면박을 주는 미련함까지 드러냅니다.
8. 누가 모른단 말입니까? 누가 길을 잃은 사람입니까? 이 부분이 우리 영혼의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알지 못하지만, 그 무지상태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 말입니다.
9. 이런 까닭에 예수는 말씀하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10. 우리는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도무지 깨닫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예수여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한 그 은총으로 우리를 돌보소서’ 이 기도를 드릴 뿐입니다.
[눈을 뜨는 날]
11. 예수는 더디 믿는 제자 둘과 동행하십니다. 하루 종일 걸어도 다 못 갈 길을 그렇게 함께 가십니다. 그렇게 예수의 열심이 우리와 동행합니다.
12. ‘계속 묶여 있으면’ 보지 못합니다. ‘계속 붙들고 있으면’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내 목적지에서 눈을 돌려 동행하는 예수를 본다면, 그날이 비로소 눈을 뜨는 날입니다.
2017.04.17.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부활, 눈이 열리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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