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절. 그가 더 들어가서 성소 입구의 두 벽기둥을 재니, 그 두께가 각각 1.06미터였다. 입구 자체 너비는 3.18미터이고, 입구 벽의 두께는 3.71미터였다. 그가 성소 끝에 자리한 지성소를 재니, 가로와 세로가 10.6미터인 정사각형이었다. 그가 내게 “이곳이 지성소다”하고 일러 주었다.[Msg]
1. 전혀 새롭거나 압도하는 장관 앞에서는 작은 탄식도 머뭇거리게 됩니다. 전에 본적이 없기에 그 앞에서 표현할 말도 마땅치 않습니다.
2. 선지자도 새 성전 앞에서 그렇게 서 있습니다. 전에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고, 상상한 일도 없던 모습입니다.
3. 그 분의 이끄심을 경험할 때, 우리는 철저히 수동적입니다. 내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찾아오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4. 이런 수동적 말씀경험을 ‘열어 보이심’ 곧 ‘계시’라고 표현합니다. 지금 선지자는 그렇게 계시된 성전뜰 앞에 서 있습니다.
5. 그 성전 안으로 누가 들어갑니까? 이끄신 분이 직접 들어갑니다. 선지자는 그 앞에 서서 듣고 있습니다. 대략만 보고 있을 뿐, 구체적인 것은 귀로 듣고 있습니다.
6. 이끄신 분도, 측량하시는 분도, 안과 밖, 위와 아래를 운행하며 볼 수 없는 부분까지 통찰하시는 분도, 오직 그 분 자신입니다.
7. 선지자는 그 분이 말씀해 주시는 것을 눈으로 보듯 받아 적을 뿐입니다. 경험한 것이 아니라, 열어 보이신 것이 구체적 현실입니다.
8. 보이신 새성전은 그 분이 사시는 곳이요, 우주의 중심입니다. 이 구체성은 그 분의 섬세함을 표현합니다. 그 분이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9.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장관 앞에서 작은 탄식도 멈춰버리듯, 그 분이 사시는 집, 우주의 중심에 관해서 선지자는 받아 적을 뿐입니다.
10. 완전한 구체성은 내가 경험하고 이해하는 범위에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험과 지혜는 부분적입니다.
11.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거나, 경험하지 않는 것들을 모호하다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모호한 것은 자신의 경험만 의지하는 삶입니다. 경험의 총합은 늘 부족합니다.
12. 창조주를 아는 것이 가장 구체적인 것입니다. 선지자는 지금 우주의 중심 앞에 멈춰 서 있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눈을 감고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2016.04.19. 노병균목사 『렉시오디비나』 ‘차라리 눈을 감고 눈을 뜨라’
'묵상 > 아침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렉디] 에스겔43:1-27 「여호와께서 돌아오시다」 (0) | 2016.04.21 |
---|---|
[렉디] 에스겔42:1-20 「제사장 방들과 바깥뜰 방들」 (0) | 2016.04.20 |
[렉디] 에스겔40:1-49 「마지막 묵시의 시작」 (0) | 2016.04.17 |
[렉디] 에스겔39:1-29 「내 영을 쏟아주리라」 (0) | 2016.04.17 |
[렉디] 에스겔38:1-23 「곡과 마곡의 멸망」 (0) | 2016.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