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절.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거라사]
1. 하루는 예수께서 ‘거라사’ 변경 지역에 들렀다. 그들은 ‘절벽 위에 사는 사람들’이다.
2. 그 마을은 가파르고 경사진 해안 절벽 위에 있었기에, ‘성을 둘렀다(거라사)’라고 불린 것은 어울리는 이름이다.
3. 평가는 늘 이중적이다. ‘절벽’은 밖에서 보면 성을 두른 듯하지만, 그 위에서는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모양새다.
[잡힌 자]
4. 예수는 이곳에서 단지 한 사람을 만난다. 그 기록은 늘 스치듯 짧게 기록하고 있지만, 결코 우연은 없다. 벼랑 위에 사는 한 사람을 찾아 온 것이다.
5. ‘귀신 들린 자’라고 기록된 무명의 한 사람. 그는 벗고, 노숙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사는 사람이다. 대화는 시작되었고, 그를 잡고 있던 존재들은 떠나갔다.
6. 지금까지 그를 붙들고 있던 영들은, 돼지 떼와 함께 벼랑 아래 깊은 바다로 빠졌다. 자유와 치유의 날이다. 빛이 임한 날이다.
[위선 자]
7. 빛은 처음엔 불편하다. 가면의 속에 있던 민낯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잡힌 자가 치유된 이 날 벼랑 위 마을의 부조리가 함께 드러난다.
8. 사람들은 기쁨이 아니라, 당황해 한다. 그들의 시선은 잡힌 자의 구원이 아니라, 물에 빠진 돼지 떼에 가 있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다.
9. 돼지 떼. 아까울 법도 하다. 그런데 돼지 떼라니, 돼지라면 유대인이들이 말하는 불가촉 대상이 아닌가?
[전도 자]
10. 우리 인생이 벼랑 끝에 서는 까닭은 세상의 폭압이나 위협이 아니다. 우리의 위선과 부조리의 언덕길이다.
11. 실상은 사람보다 돈이 중하고, 율법보다 자신의 재리가 더 중하다. 타인의 구원보다 우리 동네 돼지 산업이 더 중하다.
12. 우리는 절벽 위 마을 거라사에 산다. 복음은 그 벼랑 끝 성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 이 성에서 나오는 사건을 구원이라 한다. 그 위험한 성에서 나온 사람은 큰 소리로 다시 외칠 뿐.
2017.02.16.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우리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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