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절. 그러나 그 땅을 정탐한 사람 중,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 살아 남았다. [PT]
[계속되는 불평]
1. 인생은 비탈길에 서 있는 수레와 같습니다. 제 힘으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뒤에서 밀어주는 힘 때문에 서있고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2. 위태한 착각은 이 인생의 본질을 잊고 마치 제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 자기 밖의 존재들은 모두 거추장스러운 것들일 뿐입니다.
3. 불평은 이 착각에서 시작합니다. 이끌어 주는 은총을 잊었기에 감사가 사라지고, 감사가 없는 텅빈 마음은 불평하는 꽹과리가 됩니다.
4.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닙니다. 불평 없던 날을 꼽는 것이 더 쉽습니다. 지금껏 서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참으시는 그분의 인내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때까지 참으랴]
5. 사건은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오랜 시간 차고 차 올라 넘치는 순간입니다. 오늘 주님은 ‘그래 붙든 손을 놓으마’ 하십니다.
6. 가장 큰 진노는 엄한 꾸짖음이나, 재앙이 아닙니다. 유기(遺棄) 곧 ‘그냥 내버려둠’입니다. 그 붙든 손을 놓으실 때 우리는 저 밑으로 굴러 갑니다.
7. 우리는 평소 얼마나 독한 말들을 쏟아 내는지 잘 모릅니다. 주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8. 그제서야 우리가 내 뱉고 살았던 말들의 무게를 실감하게 됩니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고, 하나님을 무정하다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 없이 원했던 일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생존하리라]
9. ‘자연상태의 인간’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홉스의 말처럼 그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와 다름 없는 절망입니다.
10. 신앙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11. 홀로 선 나의 모습에 절망하는 사람, 이것이 ‘믿음의 사람’에 대한 다른 이름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붙들고 계신 분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12.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이 남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경험을 의지하지 않았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분의 말씀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실존의 힘이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삶의 근거였습니다.
2017.06.12.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당신. 삶의 근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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