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0. 09:59 묵상/아침묵상
18절.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1. 죄는 손이 없습니다. 흔히 ‘죄에 붙들렸다’ 말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그것이 먼저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탐욕이 그것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죄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곧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붙드는 순간 내 모든 것이 그의 것이 됩니다. 손도, 발도, 입도, 생각과 마음도 다 그의 도구가 됩니다. 3. ‘집착과 중독’이 같은 원리입니다. 죄에 집착하면, 죄에 중독됩니다. 중독이 무엇입니까? 과도하게 집착한 것입니다. 붙들었기에, 오히려 종이 되는 것입니다. 4. 과도한 집착이란 그것에 들러 붙어 있다는..
2016. 6. 9. 13:26 묵상/아침묵상
14절.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더라.1. 성경에서 “너희는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살후3:13)”하신 까닭은 선한 일에는 도전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도전도 없습니다. 일을 하면 도전도 시작됩니다. 2. 도전의 최종 목표물은 어디입니까? 리더입니다. 목자가 쓰러지면 양들이 흩어지기에 결국 최후의 공격은 리더를 향합니다. 이것은 참 전형적인 그들의 전략입니다. 3. 산발랏의 공격은 이제 느헤미야를 향합니다. 리더를 치기 위한 음모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명자를 쓰러뜨리기 위한 원수의 전형적인 방법들이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4. 먼저 올무를 놓습니다.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
2016. 6. 8. 09:49 묵상/아침묵상
11절.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1. 역사는 진자운동과 같습니다. 좌로 치우치면 곧 우로 향하고, 외부의 갈등이 발생하면, 동시에 내부의 곪은 문제가 드러납니다. 역사의 요동은 깊은 속까지 드러냅니다. 2. 총독 느헤미야가 이끄는 복원 이스라엘은 다시 큰 문제에 직면합니다. 내부문제입니다. 빈부격차와 계층, 미움과 반목입니다. 성벽이 조금 회복되자, 내면의 죄성도 회복되고 있습니다. 3. 내면의 동력이 삶으로 드러나는 것을 인격이라고 합니다. 이 격(格)을 따라 세상의 것이 유통되고 삶을 살찌우는데, 격이 엉망이면 사회가 거꾸로 갑니다. 4. 힘있는 자에게서 없는 자에게로,..
2016. 6. 7. 09:29 묵상/아침묵상
17절.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 아는 것이 모든 일의 마침입니까? 아닙니다. 앎은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진정한 앎은 행함을 통해 그 형상을 부여 받습니다. 2. 죄의 배후와 원수의 존재를 눈치챈 후에는 이들의 도전을 방비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행함이 수반되지 않는 앎이란 애초에 몰랐던 것보다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 3. 위기는 무지와 낭비에 대한 대가입니다. 생각에 대한 게으름이 무지이고, 책임에 대한 게으름이 낭비입니다. 4. 적이 있는 줄 알면서도 파수대를 세우지 않는 것, 파수대를 세워 놓고도 파수꾼이 지키지 않는 것 이런 것이야 말로 낭비이고 위기입니다. 5.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대적과..
2016. 6. 6. 07:47 묵상/아침묵상
14절.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1. 원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잊고 삽니다. 우린 악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죄에 대해서는 평균 이상으로 예민하지만, 그 배후에 대해서는 둔감하거나 관심이 없습니다. 2. 성경은 죄와 오류의 배후가 있음을 곳곳에서 밝혀줍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선과 악, 빛과 어둠과 같은 다양한 유비를 사용하지만, 우리의 이해와 상관없이 그들은 존재합니다. 3. 첫 사람을 유혹한 ‘뱀’은 그 원수의 표상이고, 주님께서 알려주신 기도 “다만 우리를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우리가 늘 그 도전에 노출되어 있음을 ..
2016. 6. 4. 09:11 묵상/아침묵상
1절. 그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1. 하루는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잘 사는 인생, 삶의 진국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2. 번뜩 든 생각은, ‘진지한 인생, 변덕스런 재미만 추구하는 나의 일상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과 십자가의 길’ 이런 것이 스쳤습니다. 3. 이어지는 목사님의 대답은 “무엇보다 우선, 하나님을 상대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역시 내 생각과 맞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말씀을 잊습니다. “물론 그 밖에도 상대할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위험과 부모와 적과 친구와 연인과 자녀와 아내와 교만과 겸손과 질병과 죽음과 성과 두려움과 평안” 4..
2016. 6. 3. 09:50 묵상/아침묵상
13절. 나는 야음을 틈타 골짜기 문을 나서서 용의 샘을 지나 거름 문에 이르는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보았다.[Msg]1.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위해 자리를 펴고 앉지만, 기도를 통해 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2. 기도로 대화가 열리면, 기도 안에서 ‘마음에 주신 것’을 받습니다. 이것이 곧 울림이고 울림은 사명이 됩니다. 기도의 사람은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일어나 행함으로 기도를 완성합니다. 3. 나는 목사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 그리고 영혼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눈으로 본 적이 없는 거대한 신비입니다. 4. 하지만 이 일은 언제 어디서나 눈으로 보고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행해집니다. 거룩한 사명의 무게만큼이나 땅을 이해..
2016. 6. 2. 10:55 묵상/아침묵상
3절.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1. 느헤미야는 누가 뭐래도 사명의 사람, 비전의 사람입니다. 그는 들었고 그는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의 음성도 직접 들려오지도 않습니다. 그는 형제 하나니에게 들었고, 상상 속에서 보았습니다. 2. 희미하게 들려오고, 흐릿하게 본 거룩한 땅의 황폐함이 그의 영혼에서 증폭되었고, 곧 이 장면이 그의 사명과 비전이 되었습니다. 3. 사명은 들은 것이고, 비전은 본 것입니다. 자신의 야망과 계획이 표면화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본래 내 것 아닌 것이 증폭되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4. 보고, 듣는 이 신비적 경험은 이 시대..
2016. 6. 1. 09:31 묵상/아침묵상
6절.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 집이 범죄하여1. 고난은 그 동안 갖고 있던 우리 자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 줍니다. 고통을 통해 광야에 들어서게 되면 우리는 땅과 하늘 사이에 홀로 서게 됩니다. 2. 고난은 내 현주소를 그대로 보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냉정하게 평가하도록 기회를 줍니다. 광야는 교양으로 옷 입고 있던 내 생각, 신앙, 인품, 욕망의 민낯을 보게 합니다. 3. 느헤미야는 광야에서 태어난 광야의 다음세대입니다. 붙잡을 추억도 없고, 한스러운 왕년도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 태어나 아무 것도 없는 광야의 아들입니다. 4...
2016. 5. 31. 10:17 묵상/아침묵상
21절. “…그 큰 날에는, 만군의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고파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Msg]1. ‘신부의 영성’이란 무엇입니까? 분열되지 않은 정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을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비유언어입니다. 2. 우리의 신랑은 더 많은 지참금이나 수려한 외모, 우리의 가문을 조건으로 삼지 않습니다. 단지 신랑을 향한 정한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3. ‘신부의 영성’이 외면화 된 것을 ‘거룩’이라고 합니다. 역시 ‘거룩’이라는 말도 뒤섞이지 않은 정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 말합니다. 4. 거룩한 시간과 공간, 물건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한 덩이 보리떡과 깨끗한 물 한 그릇이라도 구별하여 정한 것은 거룩한 것이 됩니다. 5. 광야 백성이 가죽조각으로 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