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7. 08:39 묵상/아침묵상
1절.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1. 이스라엘이 ‘싯딤’에 도착했을 때,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을 3일 길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거의 다 온 순간’입니다. 2. 많은 문제가 이 시간에 발생합니다. ‘거의 다 온 순간’ 목표가 눈 앞에 보일 때, 큰 성공이 눈 앞에 보이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 넘어집니다. 3. 그때 우리는 슬그머니 왕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그 왕의 자리를 탐하는 순간, 지축이 무너지고 넘어집니다. 4. 성공이 어른거릴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내려놓는 것은 놀랍게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날개가 아니라 짐이라고 느낍니다. 5. 하나님을 내려놓는 대표적인 행위가 ‘음행’입니다. 음행은 자기를 왕의 보좌에 앉히는 대관식입니..
2017. 7. 3. 06:45 묵상/아침묵상
31절. 그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발람의 탈선]1. 발람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참 고생이다 싶다.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늦은 밤까지 번민하고, 나귀에게까지 원망을 듣는다.2. 그게 다 제 길을 잃어서이다. 제 갈 길에서 벗어나면, 인생이 고생이다. 그걸 일탈이라 하고, 탈선이라 부른다. 3. 낭비란 사용된 시간과 노력의 양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마땅한 가치에 닿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부어질 때 낭비라고 한다. 4. 따라서 길을 잃고, 탈선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낭비다. 간혹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가치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본다. [탈선의 이유]5. 탈선의 이유는 비슷..
2017. 6. 29. 09:19 묵상/아침묵상
23~24a절.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길 위에서] 1. 가나안 땅에 이르는 여정에는 여러 민족과 도성들을 지나기 마련이다. 마음 같아선 하늘을 날아 살포시 내려 앉길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2. 이스라엘이 걸었던 이 광야 길은 우리 인생의 큰 그림이다. 우리도 부르신 자리에 이르는 길에 만나야 할 상황들이 있다. 3. 길목마다 지키고 서 있는 존재들은 어쩌면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이들일 경우가 많다. 보통 그들은 그 곳에서 오랫동안 왕노릇 하던 노련한 존재들이다. 4. 수문장처럼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을..
2017. 6. 26. 06:52 묵상/아침묵상
8절.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마지막 시즌]1. 이스라엘 광야 생활이 40년이었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 40년의 기간은 크게 세 마디로 나눌 수 있는데,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 마디의 시작점이다.2. 홍해를 건너 시내산 기간을 보낸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하기까지 일 년 남짓, 그것이 첫 마디이고, 다음으로 가데스에서 시작하는 39년의 광야 생활이다.3. 민수기 20장은 그 세 번째 마디, 곧 3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가데스에서 요단 동편까지 이동하는 마지막 일 년의 시작이다. 4. 이 마지막 마디는 세 명의 리더 가운데 한 명, 여선지자 미리암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스라엘 다음..
2017. 6. 23. 10:21 묵상/아침묵상
5절. 이와 같이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제단의 직무를 다하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구별된 상징] 1. 칠일 중 하루, 안식일로 시간을 구분한 것처럼, 백성 가운데 레위 지파가 구분되었다. 구분된 것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무엇을 위해 구별된 상징이다. 2. 그 특별한 것이란 ‘기억’이다. 공통된 기억은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 기억 속에서 돌출과 방종이 절제된다. 3. 에덴 동산 가운데 선 그 나무처럼, 안식일과 레위인도 ‘기억을 위한 장치’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창조의 질서를 기억하고 그리고 관계를 기억한다. 4. 회중 가운데 구별된 레위인은 백성을 조성하신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를 기억하는 표상이다. 그들은 만남(성소)과 대화(제단)의 자리..
2017. 6. 22. 08:18 묵상/아침묵상
8절.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다툼의 뿌리] 1. 다툼은 경계를 넘을 때 일어난다. 경계라는 것이 묘하다. 너무 강하게 그으면 장벽이 되고, 그것이 없으면 탐욕의 빌미가 된다. 2. 그래서 경계석을 세우라 하신 성경의 말씀이 지혜롭다. 각자의 자리와 분깃을 분명히 하면서도 서로 왕래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둔다. 3. 땅뿐이 아니다. 역할과 소임에도 경계가 있다. 이는 질서를 위한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역할을 맡기신 이의 주권을 인정하는 경외심이다. 4. 하지만 인간은 늘 이 경계석을 흔들고 옮기고 싶은 탐욕에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오래된 유혹이고 편만한 증상이다. [파괴적 탐..
2017. 6. 20. 07:46 묵상/아침묵상
39-40절 불탄 자들이 드렸던 놋 향로를 가져다가 쳐서 제단을 싸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고라와 그의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7-48절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화로가 거울이 되다] 1. 흠이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생채기는 같아도 결과는 다르다. 어떤 것은 생명을 지키는 백신이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것은 곪아 썩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그리스도인들은 흠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 직전의 아슬한 경계선까지 가본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경계선에서 돌아온 사람들이다. 3. 고라당이 남긴 향로는 반역의 전리품과 같다. 심정 같아선 멀리 던져버리..
2017. 6. 19. 06:43 묵상/아침묵상
1-2절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깊은 반항심]1.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에게 피곤과 깊은 반항심이 찾아 들었다. 우리는 왜 이러고 있는가? 약속의 땅은 어디 있는가? 2.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는 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비전을 붙들기 어려웠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의 풍경뿐이었다.3. 피곤이 매몰차게 반항심으로 이어지는 노정이 있다. 피곤함은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리고 이 무감각은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고, 그것은 주변에 대한 반항심으로 터진다.4. 이..
2017. 6. 16. 08:32 묵상/아침묵상
41절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훈육, 또 다른 사랑] 1. ‘안식일에 일한 사람이 죽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면, 누구나 잠시 멈칫 합니다. 좀 지나쳐 보이고, 오늘을 사는 내 기준으로 납득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좀 넓은 시각으로 이 기록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본다면 이 이야기가 보다 큰 주제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3. 이것은 일종의 훈육입니다. 종양을 제거하는 외과의사처럼 단호하게 그리고 좀더 과장되게 환부를 제거하고 있습니다. 4. 우리는 ‘방임’이 사랑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방임하는 것은 또 다른 학대입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는 자녀..
2017. 6. 15. 08:13 묵상/아침묵상
28절. 제사장은 그 부지중에 범죄한 사람이 부지중에 여호와 앞에 범한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광야학교의 시작] 1. 가데스에서의 실패는 이스라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다시 광야라는 하나님의 자궁 속에 들어가 새 사람들을 잉태할 준비를 합니다. 2. 이제 이스라엘은 광야 학교의 학생과 같습니다. 그들은 변덕스러운 자신의 삶과 씨름하며 실수조차도 새 사람을 빚는 도구로 삼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은 이 광야학교의 입학식에서 낭독되는 축사와 같습니다. 광야의 시간에서 태어날 믿음의 후손을 기대하고,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누릴 삶을 조망합니다. 4. 광야의 부모 세대를 이어 멈춤 없는 언약의 계승입니다. 또 이것은 곧 태어날 후손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