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26. 10:07 묵상/짧은묵상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10:1)" ‘어찌하여’라는 말은 탄식이 아니라, 판결문입니다. 이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이미 판단이 끝난 상태입니다.내가 이미 작성한 판결문에 하나님의 의견을 묻지만 대부분 침묵으로 답하십니다. 우리 판단이 빗나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모두가 성급합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하고, 상담하고, 기도하고, 설교를 듣는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이 지름길을 원합니다.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으며,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맥락이 있습니다.하나님의 역사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지음 받은 우리를 통해 진행됩니다. 하지만 그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연약하고 고집스럽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그들은 회개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
2017. 4. 25. 09:18 묵상/아침묵상
10절.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하나님의 활동 무대] 1. 하나님의 활동 무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의 숨결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미칩니다. 2. 예언서는 그런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미래의 비전을 오늘에 열어 보이시며, 과거를 진단하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공급합니다. [비전, 시야의 해방] 3. 오늘의 현실이 답답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야의 높이가 삶의 높이입니다. 4. 우리의 시야가 오늘의 벽에 막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간은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5..
2017. 4. 24. 08:18 묵상/아침묵상
1절. 그러나 마지막 날이 되어서는 하나님 성전이 있는 산이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설 것입니다. 그 언덕 같은 산들 위에서 그들을 다스릴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PT][인간의 역사] 1.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역할은 어쩌면 기대와 다릅니다. 발전시키고 보전하기보다, 훼방할 때가 많습니다. 2. 세계와 역사는 우리를 통해 더 살기 좋아졌습니까? 아닙니다. 더 복잡해지고, 더 거칠어지고, 더 교만해졌습니다. 3. 원심력 때문에 밀려가는 공처럼 자연상태의 인간은 중심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4. 이런 경향성을 자유, 기질, 문명… 다양하게 표현하겠지요.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경향을 ‘죄’라는 병명으로 진단합니다. [치유의 시간] 5. 모든 성경의 선..
2017. 4. 22. 07:49 묵상/짧은묵상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시18:15) 기도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가장 철저한 행위요, 가장 강력한 행위입니다.기도는 인접한 과거를 인접한 미래의 소켓에 끼워 그 둘을 유연한 유기체로 접합시킵니다.‘아멘'이라는 마침 고백은 지금까지 이루신 일들을 한 움큼으로 모아서, 이제 막 일어나려는 일들 안에 두는 일입니다.기도는 지금까지의 과거와 지금부터의 미래를 연결하는 순간이고, 감사와 소망이 동시에 만나는 예배당입니다.오늘은 지난 십 수 년, 사울의 질긴 추격을 끝내시는 날, 앞으로 다시 등장할 원수들의 두려움을 흩으시는 날입니다.더 이상 과거에 묶이지도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는 자유를 맛볼 때, 우리는 ‘오늘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2017. 4. 21. 08:38 묵상/아침묵상
6절.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 도다.[예언은] 1. 왜 예언이 필요합니까? 적지 않은 성경의 예언서와 선지자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2. 예언은 앞날을 내다보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비추는 거울, 오늘 가늠하는 진단서입니다. 3. 앞날에 대한 선언조차도 어제 뿌린 씨앗의 열매이거나 오늘 숨겨놓은 사건의 결과입니다. 4. 어느 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일 없다가도 때가 되면 떨어집니다. 그 때를 경고하는 외침이 예언입니다. [오늘을 말하다] 5. 그러므로 성경의 예언서는 가장 구체적인 오늘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6. 온몸을 떨게 하는 비관적인 예언도, 멈추고 돌이킨다면 새로운 길이 있다는 희망을 노래합..
2017. 4. 20. 08:18 묵상/짧은묵상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 기도의 첫 머리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고백할 때, 이 기도는 ‘주님이 다스리신다’는 선언과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땅의 정부의 질서 속에서 살아갑니다. 또 틀림없이 우리는 이 땅의 정부를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딜레마입니다.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 상황을 뒤로하고 ‘하나님만 모시고’ 그저 유쾌하게 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한 일도 아닙니다.그분의 주권은 강의 옹벽이 아니라, 바다를 담는 대지입니다. 때론 홍수가 나고 파도가 치지만, 모두 그 대지 위에서 존재합니다.홍수는 인간의 역사에서 대서특필되지만, 굳건히 서 있는 대지는 자기를 내세우지..
2017. 4. 19. 08:40 묵상/아침묵상
49절.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랑] 1.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실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고, 우리가 그분 안에 속하였기에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 규정하는 것입니다. 3. 예수를 통한 사랑은 인격적 사랑, 인내하신 사랑입니다. 인격과 인내는 우리의 각오의 결과가 아니라 그분의 신실하신 성품의 결과입니다. 4. 그 사랑의 이야기가 복음서의 줄기이고, 우리는 오늘 그 줄기의 끝부분을 이르렀습니다. 그 마지막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되고 있을까요? [새롭게 되는 날] 5.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
2017. 4. 18. 16:07 묵상/아침묵상
36절.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바람이 머물다] 1. 후~. 바람은 꺼져가던 불을 일으키고, 습기 먹은 봄바람은 닫혀있던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2. 떼어주는 떡을 받자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 봤습니다. 하지만 즉시 예수는 간 곳 없습니다. 3. 예수는 마치 봄바람처럼 제자의 영혼에 불어 왔고,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열렸습니다. 4. 홀로 두심이 축복입니다. 예수는 추종자가 아니라, 닮은 이가 되길 바라십니다. 이제야 제자 둘은 마음에 다시 지펴진 불을 느낍니다. [불이 타오르다] 5.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을 만나면 대부분 열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6. 열정이란 흔들림 없는 사실을 경험하고, 그것이 우리 영혼을 터치할 때 발..
2017. 4. 18. 09:16 묵상/짧은묵상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시22:28)기도는 나 개인만의 행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성령과 함께하는 역사입니다.기도는 한 개인의 골방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공동체로 흘러 갑니다.기도가 성숙하게 피어나는 순간은 개인의 관심사를 넘어 자신의 기도가 공동체 안에서 통합되는 순간입니다.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데려갑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합니다.결국 모든 기도는 끝까지 가면 찬양이 됩니다. 내 문제에서 시작했지만, 모든 기도는 결국 찬양의 문턱을 넘습니다. 노병균목사 『아침묵상』, '기도의 삼각구도' 中...(http://becomingchurch.tistory.com/485)설교(https://vimeo.com/193961342)
2017. 4. 17. 07:08 묵상/아침묵상
15-16절.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계속 묶여 있다]1. 참 궁금한 부분입니다. 왜 제자 둘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앞서 그들이 ‘이 모든 된 일’(13)에 대해 이야기하며 갔다 하니, 몰라봤다는 것이 더 의문입니다.2.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라고 설명합니다. 누가는 성경 전체에 단 한번 나오는 ‘에크라툰토’라는 단어를 골라 사용합니다.3. ‘에크라툰토’는 ‘억제하다’라는 동사의 미완료 수동 형태 단어입니다. 거칠게 번역하면, ‘(보지 못하게) 계속 묶여 있었다’ 쯤으로 풀 수 있겠습니다. 4. 아마 누가는 전혀 변함이 없는 그 두 사람의 안목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5...